▲뮤지컬 '파과' 공연사진 ㅣ PAGE1 제공
▲뮤지컬 '파과' 공연사진 ㅣ PAGE1 제공

‘파과’가 뮤지컬로 재탄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쉽지 않은 작업이겠구나’였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무대 위에 불러오는 작업은 여러모로 신경 쓸 부분이 많은 데다가, 원작의 팬과 뮤지컬 관객(일부는 교집합이 될 수 있겠으나)을 모두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파과’와 같은 작품은 특히나 더 그렇다.

지난 15일 개막한 뮤지컬 ‘파과’는 2013년 출간된 구병모 작가의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창작 뮤지컬이다.  ‘곤 투모로우’, ‘아마데우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등을 선보인 제작사 PAGE1이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창작진으로는 이지나 연출, 이나영 작곡가 등이 참여했다.

소설 ‘파과’는 65세 여성 조각을 주인공으로, 40년 동안 ‘방역’이라 불리는 살인 청부업에 종사해 온 그의 삶의 궤적과 노화, 쇠퇴, 그리고 상실이 불러오는 역설의 찬란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65세 여성 킬러’라는 강렬한 캐릭터 조형에 살인청부업이라는 난폭한 세계를 엮어 결말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섬세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이 모든 설명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소설의 여성 서사 세계관 확장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로 그런 면에서, ‘파과’는 여성 서사의 질적, 양적 발전을 꾸준히 요구해 온 뮤지컬 관객들이 두 팔을 벌려 환영할 만한 작품이다. 인터미션 포함 150분의 시간 동안, 65세 여성 킬러가 ‘일하고, 먹고, 말하고, 마시고, 생각하고, 번민하고, 죽이며’ 인물로서 주체성과 개성을 획득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파과’를 향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꽤 들린다. 원작을 뮤지컬로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것이 생략되거나 변형됐고, 그에 따라 뮤지컬 ‘파과’는 소설 ‘파과’와 같지만 다른 옷을 입은 작품이 됐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등장인물의 비중이다. 극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투우의 시선으로 조각을 바라보고 투우의 나레이션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전체적으로 투우의 분량이 크게 늘었다. 조각의 인생에서 투우보다 더 비중이 크다고 볼 수 있을 류와 강 박사가 1인 2역으로 각색된 점까지 포함해서, 뮤지컬 ‘파과’는 조각-투우의 대치를 스토리의 골자로 선택한 듯한 느낌을 준다. 투우의 이야기는 모두 조각을 향해있기 때문에 극 자체는 여전히 ‘파과’지만, 무게중심이 애매해지는 순간이 군데군데 찾아든다.

▲뮤지컬 '파과' 공연사진 ㅣ PAGE1 제공
▲뮤지컬 '파과' 공연사진 ㅣ PAGE1 제공

무대와 슬로우 모션, 액션 연출에서는 PAGE1의 전작 ‘곤 투모로우’를 연상케 하는 순간이 많았다. 살인청부업이 소재가 되는 만큼 액션의 비중이 높고, 삭막하고 건조한 느와르적 분위기를 살린 다소 살풍경한 무대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회전무대를 통해 장소와 시간의 변화,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몸을 사리지 않고 액션을 펼치는 과거 회상 속 어린 조각과 류, 그리고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조각과 투우가 보여주는 결투 장면 역시 완성도가 높다.

구병모 작가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긴 호흡의 만연체를 무대 위에 풀어내는 작업은 지난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설의 말맛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이 느껴진다. 그러다보니 나레이션이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등장하는데, 배우들의 육성이 아니라 녹음된 사운드이다보니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조각을 연기한 차지연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모습으로, 조각에게 주어진 상실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13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오른 김재욱은 강점인 연기력으로 투우의 캐릭터를 섬찟하게 풀어놓았고, 여기에 류와 강박사 1인2역을 소화한 지현준의 안정감 있는 연기와 어린 조각 역의 유주혜까지 배우들의 열연이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다. 

원작을 기반으로 한 작품, 특히나 창작 초연은 짊어진 기대의 무게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뭉그러진 복숭아를 손에 쥔 채, 오랫동안 쉼없이 짓물러온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조각이 날 것의 울음을 뱉어낼 때 우리는 ‘상실을 살아내야 한다’는 말을 보다 더 가깝게 이해하게 된다. 다소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파과’에 대한 기대를 계속 가져가고 싶은 이유다. 뮤지컬 ‘파과’는 오는 5월 26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인물 소개는 기자가 관람한 회차 캐스트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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