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사진 ㅣ 제공 (주)엠피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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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딛고 있는 허상은 사실은 현실인 줄 알았던 것

내가 딛고 일어난 허상은 어쩌면 너에게 현실

‘평범한 인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은 무엇인가. 아주 풍족하지는 않지만 아주 부족하지도 않고, 아주 눈에 띄지도 않지만 적당한 존재감은 있고, 아주 특별하지도 않지만 별 볼 일 없지는 않은 인생. 세상에.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건 완벽한 인생(good life)이라고 불러야 한다.

‘굿맨’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생후 8개월의 아들을 병으로 잃은 후 마음의 병을 앓게 된 엄마 다이애나와 그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하는 아빠 댄, 그리고 사춘기답게 엇나가는 딸 나탈리가 우여곡절을 겪은 후 결국은 평범의 근처에서라도 살기 위해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

굿맨이라는 이름에서 밝히고 있듯이 굿맨 가족 중 그 누구도 나쁜 사람은 없다. 그 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댄은 여자친구 다이애나가 임신하자 그와 결혼하기 위해 야반도주를 감행하여 어떻게든 자신이 사랑하는 다이애나와 함께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아들을 잃은 다이애나가 양극성장애 등의 병으로 고통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이애나는 댄과 같이 건축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고 아이가 생기면서 가족과 학업, 진로를 포기한 채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맞바꾼 아이를 잃음으로서 다이애나는 사실상 그때 자기 자신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따라서 죽은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상실감을 4개월만에 떨쳐내는 것은 불가능했으므로 그 사실을 모른 척하는 것이 오히려 쉬웠을지도 모른다.

나탈리는 아픈 엄마와 언제나 엄마가 우선인 아빠라는 부모 밑에서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 예일대 진학을 꿈꾸던 고등학생이다. 자신만은 좋은 딸이 되어야 한다는 스스로의 강박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죽은 오빠의 환영에 가려져 어떻게 해도 자신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나탈리가 결국 선택한 것은 약을 통해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었다.

공연사진 ㅣ 제공 (주)엠피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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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맨 가족은 모두 현실을 직면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그 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걸 안고 살아가고 그래서 다시 짓무른 상처 위에 상처가 쌓이고 그것을 얇게 덮인 딱지로 대충 덮고 살아가려 하다 결국 매번 실패해왔던 것이다.

사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다이애나의 전기충격치료와 기억상실을 계기로 각색한 과거만을 다이애나에게 심어주려던 댄과는 달리 나탈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다이애나와 나탈리는 마침내 드디어 자신들의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지금까지 그들을 휘두르던 허상을 딛고 일어나 살아가기를 결심한다. 그간 다친 다리 대신 엉뚱한 다리를 치료해 여전히 다친 다리를 절고 있을지라도 이제 그들은 자신이 다친 다리가 어느 쪽인지 안다.

그러나 댄은 어떻게 보면 아내의 치료보다는 가족의 ‘정상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집을 짓고 그곳에 불을 밝히고 아내와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평범함이라는 허상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댄에게서 다이애나는 떠난다. 이제 댄에게 남은 것은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함의 근처로 떠날 딸과 영원히 자신의 곁에 있을 아들 게이브이다. 극이 끝났을 때 여전히 현실에는 눈을 감은 채 허상을 딛고 서 있는 것은 댄뿐이다. 그러므로 댄의 곁에 남아 있는 것도 허상일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인물 소개는 기자가 관람한 회차 기준 캐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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