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문학평론가⋅문학 강사⋅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 대표저서; 가위바위보⋅반딧불 반딧불이⋅스타 탄생의 예감⋅영화 쏙쏙 논술 술술⋅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카페 정담
수필가⋅문학평론가⋅문학 강사⋅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 대표저서; 가위바위보⋅반딧불 반딧불이⋅스타 탄생의 예감⋅영화 쏙쏙 논술 술술⋅이야기가 있는 문학풍경⋅카페 정담

“또, 가려고요?”

키르기스스탄을 가기 위해서 항공권 예매를 했다고 하니 집사람이 대뜸 한마디 한다. 예견된 일이라서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또 가려고요?’에 대한 대답은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히말라야에 자주 가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일상에서 잠시 여유를 찾기 위함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에서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며 행동할 수 있는 능동적 심리 상태를 갖는 일이 필요해서다. 나는 시간, 공간 속에서 마음을 비우는 일이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길임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무언가를 찾아서 떠나는 일은 그 속에서 위안을 받고자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낯선 곳에서는 스쳐 지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대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 고민 없이 자유로워서 좋다.

하지만 집사람의 생각은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얼마 전에 히말라야 체르고리봉에서 하산하다가 부상을 입고 헬기로 긴급 후송되어 카트만두 병원에 입원했던 일, 응급 상황으로 귀국하여 대학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았던 일이 먼저 떠올랐을 테니 부정적인 답변은 당연하리라 생각한다.

문화센터 수강생 중에는 나이가 80이 넘은 분이 많다. 그들 중 상당수는 산업사회의 빠른 변화 속에서 자신을 살피지 못하고 바삐 살다가 인생 황혼이 되어서야 새로운 삶을 위해 찾아 왔다고 한다. 그간의 삶이 얼마나 아쉽고 안타까울지 동정이 간다.

나 어릴 적, 동네 어르신의 기준은 환갑 나이로 구분했다. 환갑이 지나면 자연스레 노동에서 해방되고 마을 사람들에게는 멘토 역할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일상사 옳고 그름에 관해서 조언을 구하고 그의 충고는 곧 지침이 되어 따랐던 기억이 있다. 요즘 세상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과거나 현재의 시간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간의 길이는 똑같다. 다만 같은 시간을 내 중심으로 쓰느냐, 세상 중심에 쫓겨 쓰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요즈음 히말라야 오지에 사는 사람들은 나이가 60만 되더라도 지덕이 뛰어나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이가 꽤 있다. 그들은 생각이 유연하고 자기 분수를 제대로 안다. 그들은 철저하게 자연과 함께하며 자연의 순리에 따라서 모든 행동을 결정한다. 많은 시간 묵언默言중에 소통하고 사색과 상상을 바탕으로 세상에 접근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고 모든 것에 막히지 아니하니 잘 통할 수밖에 없다. 인생을 아주 천천히 살아가기 때문에 그들에게 반백半百의 삶은 문명사회에서 온백[白壽]을 사는 사람보다 지혜와 덕이 뛰어나 상대적인 만족감이 더 크게 나타난다.

히말라야의 높은 산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그의 품에 안겨 있을 때 거기에서 오는 포근함은 지친 육신과 영혼을 편안케 한다. 물질문명이 고도화 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기계 중심으로 타자他者의 계획에 철저하게 끌려 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니 백 살을 산다 해도 사유思惟의 이성 작용은 크게 높아질 수가 없다. 결국 문명화된 사회에서 사는 사람이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보다 평균연령에서는 오래 산다고 볼 수 있겠으나 깨달음의 수명은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이 훨씬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안나푸르나 트래킹 도중, 잠시 인연이 되었던 어느 노인의 모습이 자주 생각난다. 생면부지의 방문객을 향해 차를 권하던 평화로움과 떠나가는 관광객 뒤에서 손을 흔들어 주는 여유는 나 자신을 겸허하게 했고 설레게 했다. 무엇보다도 가던 길 아쉬워 뒤돌아보았을 때, 관광객이 밟고 지나간 야생화를 손으로 받쳐 들고 웃음 짓던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자仁者의 대표 모습이었다.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 자신감 없이 마음이 초조해질 때, 내 마음은 어느새 세계의 오지마을로 달음질친다. 안나푸르나 노인과의 인연을 더듬으며….

저작권자 © 서울자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